Friday, March 4, 2011

필리핀의 경제


 

[*] 필리핀의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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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은 풍부한 광물, 비옥한 토지 등 천 연자원과 해양자원이 풍부한 국가이다. 노동인구의 40% 이상이 농업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로 플 랜테이션(Plantation) 농업이 유명하다. 대표적인 작물로는 쌀, 옥수수, 바나나, 설탕과 사탕수수, 카 사바 등이 있으며 마(麻) 생산은 세계 1위이다. 그러나 일부 계층만이 부(富)를 독식하는 사회 구조로 인해 대다수의 국민들이 빈곤과 채무에 시달리고 있다. 사실 필리핀은 독립이후 1970년대까지 아 시아의 경제를 이끄는 경제 선도국가이자 동남 아시아국가연합(ASEAN)의 창설한 주도한 국가였다. 하지만 마 르코스 정권하에서 정경유착이 심화되면서 경제구조가 왜곡화 되었고 비효 율적인 경제정책이 수립되었다.

1950년대 필리핀은 미국의 경제 원조를 바탕으로 제조업 분야의 성장을 이룩하였다. 1950년대 말 제조업의 성장률이 둔화되자 정부는 달러에 대한 페소(peso)화를 평 가절하하여 수입 및 외환통제를 해제하였다. 그 결과 1963년부터 경기는 회복되기 시작했다. 마르코스가 집권한 첫 시기에는 적극적으로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고 제조업 분야에 민간자본의 투자를 촉진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상당기간 성장을 지속하였다.

1970년대 들어 필리핀 경제는 황폐화지기 시작했다. 재선을 염두해 둔 마르코스는 방만한 지출로 재정 위기를 자초하였고, 1972년 계엄 령 선포 후 자신의 측근 자본가들을 중심으로 국가주도의 경제발전계획으로 전환했다. 신 사회(New Society)의 창조를 주장하며 선포한 계엄령 이후 5년간 각종 투자 인센티브가 제공되고, 수출촉진지역이 설치되는 등 미국과 국제 기구로부터의 지지에 힘입어 고도의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경제 개발에 투입될 자금이 대부분 공정대회차입의 형태로 마련되어 대외 채무액이 겉잡을 수 없이 증가하였고, 이 차관조차도 친 마르코스 국영기업으로 유입되어 경제 실무자들의 부패를 조장했다. 설 상가상으로 1979년 제 2차 석유 파동으로 인해 세계 경제가 침체되자 필리핀의 경상 수지 적자는 심화되었다. 1983년 아키노 사후 필리핀 정부는 정치적 위기에 내몰리게 되었는데 불안해진 정정을 틈타 다량의 외화가 해외로 유출되었으며 급기야 1983년 10월, 필리핀 정부는 모라 토리움(moratorium)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이주하였다.

1986년 대통령직에 오른 아키노는 국영 및 정부 통제 기업을 사유화하는 경제 자 유화 정책을 실시하고, 시장 논리에 입각한 세제 개편과 무역과 투자제도를 자율화하는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만연한 빈곤을 퇴치하고 높은 실업률을 낮추기 위한 제도적 개혁도 병행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개혁과제는 경제개발 6개년계획(1987~1992)을 통해 다소 해갈되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외채증가와 기업 분야의 부채를 정부가 담당하면서 재정적자는 심화되었다. 더군다나 개혁에 반대하는 군부가 7차례에 걸친 쿠 데타를 일으켰고, 1990년대에 들어 발생한 극심한 가뭄과 화산폭발 등 자연재해로 인해 시국이 불안해 졌다.

1992 년 취임한 라모스 대통령은 2000년까지 모국(母國)을 신 흥공업국으로 진입시킨다는 목표 하에 '필리핀 2000 비전' 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경제개발 6개년 계획(1993~1998)을 시행하였다. 이 계획의 주요 목표는 국민의 빈곤 경감, 사회적 평등과 지속적인 경제발전이었다. 1997년 태국에서 시작된 재정 위기로 인해 페소는 급격하게 평가절하 되어 국 제시장에서 필리핀 제품의 구매력이 감소되었고, 국내적으로 산업 전반에 걸친 불경 기가 이어졌다.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발생한 엘리뇨 현상, 인 도네시아 연무, 가뭄 등 각종 자연재해는 필리핀 경제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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